오늘(2011년 5월2일-일)은 어제부터 계속된 황사로 하늘이 뿌였다. 저번 주에는 아내와 함께 천보산~해룡산~왕방산을 가기로 했다가 길을 잘못 들어 천보산~칠봉산만 완주하고 지행역으로 내려온 적이 있었다. 그래서 오늘 가기로 마음먹고 아침부터 서둘러 가방을 둘러매고 3 산 도전에 나섰다. 오늘은 나 홀로 78번 버스를 타고 회암사지 입구에서 내렸다. 들머리를 회암사지 입구로 잡은 것은 그동안 천보산을 여러 번 올랐으나, 거의 투바위 고개에서 내려서 등반했기 때문에 그 유명한 천년고찰 회암사지터를 한 번도 가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11시 05분 회암사로 가는 길은 사월초파일이 얼마 남지 않아서인지 연등으로 쭉 매달아 놓았다. 드디어 회암사지터가 보인다. 회암사에서 학생들이 줄지어 내려오고 있다. 강원도 화천중학교 학생들이 버스를 대절하여 현장학습에 왔나 보다.
국가사적 128호인 회암사, 안내판에 회암사의 역사에 대해 기록되어 있었다. 그 내용을 보면 회암사의 창건에 관한 기록은 아직 발견된 것이 없지만, 고려 명종 4년(1174년) 금나라 사신이 들렀다는 문헌기록이 남아있어 적어도 12세기 중엽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초기에는 현존하는 가람보다 소략한 규모였으며 현재 남아있는 대규모의 가람은 이후 중창된 것이다. 고려말 대학자인 목은 이색의 목은집에는 당시 회암사의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되어있는데, 3천여 명의 승려가 머무르는 대사찰로 건물은 모두 262칸이며 높이 15척의 불상 7구와 10척의 관음상을 모셨다고 한다. 건물이 크고 웅장하고 아름답고 화려하기가 동국 제일이며, 중국에서도 이러한 사찰을 찾아보기 힘들 것이라고 기록하였다.
한참을 올라가니 회암사가 보인다. 뒤쪽으로는 부속 절을 추가로 하나 더 건축하고 있었다. 스님에게 등산로를 물어보니 우측 계단으로 가서 올라가라고 알려 주었다. 한참을 올라가니 최근에 내린 비로 산림 숲이 우거져 길이 잘 보이지 않았으나, 그동안 산에 다닌 경험으로 바위가 낧은 곳을 밟고 올라가니 어느덧 능선에 다다랐다. 능선은 투바위 고개에서 올라오는 길과 이어져 있었다.
이 곳이 투바위 고개에서 올라오는 지점과 회암사에서 올라와서 만나는 능선에 위치한 천보산 정상 표지목이다. 장림고개 방향으로 쭉 올라가니 천보산 5보루가 나온다. 천보산 5보루를 뒤로하고 조금 올라가니 해룡산 방향 안내판이 나온다.
이곳에서 더덕을 캐러다니는 노인을 만났다. 해룡산 가는 길을 물어보자, 상세히 알려 주었다. 더덕 많이 캤냐고 물어보니까, 더덕은 없고 취나물 두어 장 뜯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길을 안내해주던 친절한 노인은 좌측 임도로가고 나는 우측 해룡산 방향으로 접어들었다. 여기서부터 해룡산 정상까지는 2.1km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해룡산을 오르다 보니 길을 알려준 노인이 천보/해룡/왕방산 MTB코스인 이길로 곧장 걸어가고 있었다. 이 길은 산 중턱에 만들어 놓은 산악자전거 전용도로이다.
해룡산 정상 가는 길에 있는 헬기장이다. 정상 부근에 가니 철조망이 있어 좌측으로 돌아서 올라갔다.
드디어 해룡산 정상에 도착했다. 13시 20분이다. 올라온 길을 뒤돌아 보니 천보산이 보인다. 짙은 황사 때문에 전망이 좋지 않아 사진 촬영은 포기했다. 해룡산 정상에 있는 안내판에는 다음과 같이 표기되어 있었다. 해룡 산은(661m)은 회암령인 천보산을 따라 산계를 형성하고 동북으로 뻗어 탑동, 왕방마을, 오지재 고개에서 끝나며 왕방산과 접한다. 탑골(일명 장림) 마을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상에는 천호(또는 감지라 하는 연못으로 비를 빌면 효험이 있으며 사람이나 말이 연못가를 밟으면 비가 오거나 흐리기도 하였다고 하나 지금은 그 자리를 알 수 없음)가 있었다고 동국여지승람에는 적고 있다. 또한 어수정이라는 우물이 있어 이곳을 찾은 왕이 이 우물물을 마셨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중기의 문인이자 서예가인 봉래 양사언이 이산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
이곳에서 왕방산 입구라 표기된 방향으로 가니 포장도로였다. 오지 재고 개쪽이었다. 한참을 내려오다 잔디밭에 앉아서 간단하게 준비한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13시 45분이다.
오지재 고개에서 왕방산을 향해 올라간다. 14시 10분이다. 왕방산 정상까지는 3.4km, 우측 계단으로 힘차게 올라간다.
0.6km 올라오니 대진대 방향 안내 표지판이 보인다. 이곳에서 막걸리로 간단히 목을 축인다. 혼자 먹는 막걸리는 맛이 없다. 딱 한잔 들이켜고 일어선다.
조금 올라가니 돌탑이 보인다. 산행하는 사람들이 하나하나 올려놓은 것이 이렇게 높은 돌탑이 되었는지? 누군가가 혼자 정성스레 만든 것인지 알 수 없다.
왕방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호젓하였다. 능선에 서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지나가는 사람 한 사람도 없었다. 평일이라서 그런가 보다.
드디어 왕방산 정상에 도착했다. 15시 35분, 드넓은 공터에 표지석과 표지판이 아름답기만 하다.
왕방산 표지석 앞에서 인증 샸을 했으나 혼자서 사진을 찍다 보니 사진이 잘못 나와서 블로그에 올리지는 못하고, 풍경사진만 올리게 되었다. 혼자 여행한다는 게 참으로 외롭다는 것을 실감케 한다.
이사진은 왕방산 정상에 우뚝 솟은 소나무이다. 앞에는 의자를 만들어 등산객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왕방산 정상 표지판에는 이렇게 씌어있다. 왕방산은 동두천시 동단에 우뚝 솟은 해발 737m의 우람한 산이다. 광암동 왕방마을 남단에서 기봉하여 북쪽으로 뻗어내려 오다 왕방마을 뒤에 이르러 국사봉과 연봉되는 장장 20여 리의 산맥을 형성하고 있다. 이산은 동두천시 동북지역의 진산으로 포천시와 지역을 나누어 공유한다. 비록 산이 험하지는 않으나 산세가 수려하고 위엄이 가득하여 예로부터 탐방객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하산은 왕산사 길로 내려가기로 했다. 왕산사까지는 1.7km, 내려오는 길에 목이 말라 준비해 간 칡즙을 하나 먹었다. 물이 모자랄 때는 포장된 즙을 준비해 가는 것도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목이 말라서인지 진짜로 맛있게 먹었다.
16시 20분.드디어 왕산사에 도착했다. 천년고찰 왕산사의 전경이다. 햇볕이 반사되어 가까이서 촬영하지 못하고 멀리서 사진을 찍었다.
왕산사의 창건에 대해 옆에 설치된 표지판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었다. 왕산사는 서기 877년 신라 헌강왕 3년에 도선국사께서 창건하자 왕이 친히 방문하여 격려해 주었으므로 산 이름은 왕방산, 절 이름은 왕산사라 하였다. 일설에는 조선을 세운 태조가 아들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함흥으로 가서 나오지 않으므로 무학 스님께서 가셔서 모셔오는데, 이즈음에 와서 왕자의 난이 일어났음을 감지하고 발길을 돌려 이 절에 들러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 가면서부터 왕방 사라 불렀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이러한 왕방사가 어떻게 유지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1572년 조선 선조 5년에 청암과 백운 두 스님이 고찰하고 1627년 인조 7년에는 청산과 무영 두 스님이 중창하고는 왕산사라 하였다고 전한다. 왕산사를 뒤로하고 포천시내로 버스를 타기 위해 내려왔다. 나 홀로 산행이었으나 보람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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