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지역 산/남해금산.황매산,대야산

남해 금산 무박산행

불~나비 2011. 4. 22. 09:55

 오늘(2009년 6월 14일-일)은 산악회에 가입하고 처음으로 가는 무박 정기산행을 남쪽의 끝에 있는 금산( 681m)으로 간다. 그동안 근교산행으로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이제 정기 산행에도 가끔 참석하다가 드디어 무박산행에 도전하게 된다. 무박산행, 100대 명산이면서, 바다가 보이고, 기암괴석이 즐비한, 그리고 반가운 산우님과의 만남 등은 즐거움과 기대감으로 나의 마음을 더 설레게 한다. 밤늦은 시간에 배낭을 메고 산으로 향하는 내 모습이 어색하지만 또 다른 경험이 되어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21시40분에 양주에서 탑승하여 최종 집결지인 사당역으로 간다. 대형버스는 만차를 이뤄 빈자리를 찾아보기 힘들다. 회원과 지인들 43명이 인사를 나눈 뒤, 23시 45분에 사당역을 출발한다. 숙면을 취하고 있을 시각에 고속도로를 달린다.공식적인 인사말, 산행코스 설명등으로 시간은 흐르고, 변화된 분위기에 잠은 오지 않는다.버스는 안성휴게소(0:25)→덕유산휴게소(2:10)→사천휴게소(3:20)에서 각각 10분씩 쉰다. 심야 운전하는 기장의 뒷모습이 애처롭기만 하다.출발한지 5시간이 되는 4시 45분에 저수지가 있는 복곡 주차장에 도착한다. 어둠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는 금산은 잠을 설치면서 찾아온 손님을 반갑게 맞아준다. 산으로는 유일하게 해상국립공원에 지정된 이 산은 본래 원효대사가 보광사라는 사찰을 지어서 보광산으로 불리다가, 조선 태조와 관련된 전설에 따라 금산으로 바뀌었다.고려 말 이성계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드리고 왕위에 등극하게 되자 보은을 위해 영구불멸의 비단을 두른다는 뜻의 비단 금(錦) 자를 썼다고 전한다. 넓은 주차장과 뒤에 보이는 올라야 할 산은 명산에 잘 왔다고 한다. 아침식사(5:20)는 콩나물 국밥으로 잠을 설친 피로를 풀고, 산에 오를 에너지를 보충한다.산에 오를 들머리가 복곡 주차장이 적당하지 않기에 반대편 금산 주차장으로 이동(15분정도 소요)한다. 도로변에 위치한 주차장은 크지는 않으며 등산로 입구에는 금산 표시석이 있다. 바라보는 능선의 화강암 바위들은 아침햇살을 받아 더 멋지게 다가온다.  인터넷에서 미리 사진으로 보았던 자연의 조각품들을 어떻게 가까이서 감상할지 궁금해진다. 6시30분부터 41명이 인원이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노란 등판을 부착한 산우들이 힘차게 탐방지원센터를 통과한다. 오른편의 자연관찰로(1km:1시간 소요) 입구를 지나니, 물이 흐르는 계곡 위 숲에서 산에 적응하는 시간(6:45, 5분간)을 가진다. 두 개의 연육교(남해대교, 삼천포대교)로 이어져 있지만, 바다에 있는 섬에 우뚝 솟은 돌산이다. 바위산인데도 등산로는 울창한 활엽수 숲을 이루고 있어 아침공기와 함께 쾌적하다. 아침햇살이 나무사이로 파고들고, 산새들의 큰 노랫소리가 정겹기만 하다. 약수가 나오는 샘터에서 간단한 행동 식을 하면서 두 번째 쉬어(7:05, 5분간) 간다. 바람이 없어도 시원하니 새벽 등산의 철이 다가온 듯하다. 높은 산은 아니지만, 해수면에서 급한 경사를 따라 계속 오르기만 하니 힘이 배가 된다. 흙길은 나무 봉을 이용한 계단, 너덜 길은 돌계단으로 넓게 만들어 안전하게 많이 쉬어가도록 한다. 쌍홍문(600m) 정상(1.2km) 표시 이정표와 안내도 앞에서 3차 휴식(7:20, 5분간)을 한다. 나무 계단(7:30)을 오르니 능선이 나타나며 서서히 조망이 가능하게 되며, 한쪽으로는 궁금해 하던 바위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두 굴이 쌍무지개 같다는 제15경인 쌍홍문( 7:40)이 금산의 관문답게 제일 먼저 선을 보인다. 그 앞에는 검을 집고 문을 지키고 있는 장군봉(일명: 수문장)이 서있다. 쌍홍문으로 들어서니 하나의 동굴이나 다름없다. 입구부터 돌계단을 이용해 오르고, 많은 계단을 올라야 문을 벗어난다. 굴속 계단을 오르면서 새삼 자연의 신비에 감탄하게 된다. 굴속에서 바라보는 녹색의 숲과 산우들의 모습은 영상에서나 보아 오던 풍경이다. 삼거리에서 오른쪽의 보리암(300m)을 뒤로하고 왼편 단군성전 방향으로 간다.잠시 이동하면 일월봉을 만나게 된다. 두 개의 바위가 가까이 보면 일(日)자형이고 멀리서 전체를 보면 월(月) 자형으로 보인다. 부처를 모시는 불법을 지키는 신(神)인 제석천이 내려와 놀다 갔다는 제19경인 제석봉(7:50)에 오른다. 바다는 해무로 잘 안 보이나, 좌우의 바위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장관을 이루고 보리암도.....돌로 지은지 오래된 금산산장은 음식과 숙박이 가능하다고 한다. 지붕 위로 보이는 바위에는 까마귀가 우리를 반겨준다. 아직까지 우리에게는 흉조로 보이지만, 산에서는 길조라고 하니 남은 산행이 기대된다. 신라의 원효대사, 의상대사, 윤필거사가 수도 좌선했다는 제20 경인 좌선대를 바라보게 된다. 앉았던 자리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한다.한 사내가 이웃여인에게 반하여 상사병으로 사경을 헤매자, 이를 알게 된 여인이 이곳에서 그 사내의 마음을 받아 들였다는 제27경인 상사암( 8:05-8:35)이다. 궁금해하던 바위들의 형상이 조망 안내판과 함께 들어온다. 건너편 정상 밑으로 보이는 보리암도 손에 잡힐 듯하다. 단체사진도 찍으면서 아름다운 절경들을 추억에 담는다. 단군성전으로 가는 길에 인명구조를 위한 헬기장이 있다. 옆에는 자연을 보호하자는 양심의 거울이 있다. 아직도 우리 모두가 지켜야 할 일이다. 15분 동안 가는 길은 동네 야산의 산책로 같은 느낌을 가지게 한다. 숲 속의 오솔길 사이로는 이곳 산장과 단군성전에서 재배하는 것으로 보이는 밭이 있다. 상추, 들깨 등 각종 푸성귀가 잘 자란다.사거리 이정표를 따라 우리 겨레의 시조인 단군 할아버지를 모신 성역인 단군성전(8:50)에 이른다. 1995년에 건립된 성전으로 분위기 자체가 엄숙하여 모두가 숙연해진다. 다시 사거리로 나와 내려가면 제33경인 흔들바위(8:55)가 나온다. 거북이 모양을 한 바위로 지면과 맞닿은 면적이 넓어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남해금산 표시석(681m)이 있는 주위의 모습은 올라오면서 보았던 바위들의 화려함에 비하면 미약하여 늦게 돌아서 왔나 보다. 옆에 있는 제1경인 망대( 701m, 9:10) 정상에 오른다. 사방의 조망과 장엄한 일출은 절경이며 아름다운 남해바다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이곳 최남단 봉수대는 나라의 병난이나 경축 시 불을 피우거나 연기로 알렸다. 망대 옆에는 큰 바위가 있는데, 한쪽 면에 쌍홍문을 통하여 금산에 올랐다는 유명선생의 글로 전해져 온다. 바위 뒤 그늘에서 휴식과 남은 행동식(9:15-9:35)을 한다. 내려오다 보니 매점으로 보이는 곳에 도로와 소형차들이 보인다. 아침식사를 하였던 곳에서 올라오는 도로인 듯하다. 도로 반대편으로 내려오니 보리암(9:45)이다. 신라 신문왕 3년(683)에 기도처로 창건된 보리암은 3대 기도처중(낙산사의 홍련암, 석모도의 보문사) 하나이다. 경내에 들어오니 암자보다는 규모가 커서 사찰이라고 보아야 할 듯싶다. 암자에 인접해 있다 하여 보리암전 삼층석탑, 해수관음보살상, 보리암과 바위들이 어느 쪽에서 보아도 그림이다.보리암에서 하산(10:05)을 시작하여 5분정도 내려오니, 쌍홍굴 삼거리이다. 올랐던 길을 계속 내려와, 들머리 주차장(11:00)으로 회귀한다. 4시간 30분의 여유 있는 산행이다. 이제 많은 대형버스들이 등산객들을 내려놓는 것이 서울에서 6시쯤 출발한 듯싶다. 무박의 덤으로 얻은 보너스 상주해수욕장으로 간다. 가까운 거리의 상주해수욕장 해송 아래에서 총괄대장님의 지인이신 나얌님이 동행하여 등산도 못하고 준비한 자연산 농어회와 매운탕으로 여름휴가를 앞당겨 보낸다. 모두가 바다 앞에서는 어린 동심으로 돌아가는 듯, 바다 알탕, 비치발리볼까지 한다. 보는 것도 즐겁기만 하다. 15시에 남해의 등산과 여행을 멋지게 끝내고 상경하기 시작한다. 오다가 휴게소에서 남은 음식으로 저녁까지 해결하느라 다소 늦은 9시경에 귀가한다. 무박산행을 처음 주관하신 총괄대장님을 비롯하여 여러대장님이 계시기에 안산, 즐산 하였습니다. 정기산행 시마다 많은 인원의 식사와 온갖 일을 맡아하시는 총무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또한 맛있는 회를 알선해 주신 지인님, 찬조를 하여주신 여러 산우님께 감사드립니다. 같이하여 주신 모든 산우님들 즐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