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여행스케치

영천 임고서원(포은 정몽주 선생 사액서원)

불~나비 2017. 4. 24. 21:15

 임고서원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역사인물인 포은 정몽주 선생을 추모하기 위하여 조선 명종 8년(1533)에 부래산에 창건을 시작하여 이듬해인 1554년에 준공하였으며, 명종으로 부터 사서오경과 많은 위전을 하사 받은 사액서원이다. 그 후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선조 36년 (1603)에 현 위치에 옮겨지었다. 충절과 의리의 상징인 정몽주 선생 사액서원을 탐방해 보기로 한다.

 

입구에 들어서자 먼저 선죽교가 보인다. 고려말 충신 정몽주가 이성계를 문병 갔다가 돌아올 때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이 보낸 조영규 등에게 피살된 곳이다. 다리 위 돌에 붉은 반점이 정몽주의 피얼룩이라 전하여진다.

  

 

이 나무는 높이 약 20m, 가슴높이의 줄기둘레가 5.95m에 이르는 나이가 약 500년의 은행나무로써 생육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노거수이다. 수관 폭은 동서방향으로 약 22m, 남북방향으로 약 21m에 이르고 있다. 이 나무는 본래 임고서원이 부래산에 있었을 당시 그곳에 심겨 있었던 것이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임고서원을 이곳에 다시 지으며 옮겨 심은 것이라고 전해오고 있다

 

  

 

포은선생 숭모 기념비이다.유려한 문장과 호방한 기품을 띤 시의 저작으로도 뛰어난 재능을 보인 선생이지만, 그는 무엇보다 쓰러져가는 고려조를 홀로 바로 세우려다 끝내 목숨을 던진 기개와 절의로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 그것은 두 나라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 유교의 가치, 이른바 춘추대의를 실천한 것이지만, 오늘날에도 자기 직분에 대한 자발적 충실이라는 공인의식에 깃든 확고한 책임감과 불변의 지조로서 높이 평가받는 것이다.

  

 

이방원이 정몽주를 설득하기 위해 부른 하여가에 정몽주의 답가인 단심가이다. 또한 정몽주 선생이 어렸을 적에 어머니가 지은 백로 가이다.

 

  

임고서원 전체 안내도 앞에서 인증숏 한다.

  

 

 

임고서원은 조선 명종 8년(1553) 임고면 고천동 부래산에 세워져 1554년 사액되었으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선조 36년 (1603)에 현 위치에 옮겨졌고, 이때 임금으로부터 다시 임고서원으로 사액되었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8년(1871)에 훼철되었으나 1965년에 정몽주의 위패만을 모시고 복원하였다

 

  

 

임고서원 본당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본당에 들어서면 임고서원이 보인다.

  

 

본당 뒤편에 자리 잡은 후문이다.

 

  

임고서원의 전체적인 모습이다. 유물을 간직해 놓은 유물관도 있었다.

  

 

 

포은 정몽주 선생 단심로이다. 산책코스로 정몽주 선생을 생각하며 산책할 수 있는 길이다.

 

  

 

포은로 입구 정자이다. 초반 경사가 급한 계단이 있을 뿐 그다음부터는 무난한 평지 능선길을 걸을 수 있다. 전 구간이 소나무 그늘로 덮여있고, 전 구간이 폭신폭신한 흙길로 되어 있어서 산책하기 좋은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