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여행스케치

1박2일 경기도 여주시 볼거리 찾아 떠나는 여행

불~나비 2015. 8. 31. 09:13

오늘(2015년 8월 31일)은 1박2일 워크샾을 떠나는 날이다. 먼저 도착 한곳은 여주 명성황후 기념관이다. 명성황후는 대원군 실각 후 민씨척족을 앞세워 정권을 장악, 1876년 강화도조약을 맺고 일련의 개화정책을 시행했다. 먼저 개화사상가인 박규수를 우의정에 등용하고, 대원군 집권당시 쇄국정책을 담당했던 동래부사 정현덕과 부산훈도 안동준, 경상도관찰사 김세호를 차례로 파면·유배했다. 개화를 위해서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하고, 삼군부를 폐지했으며, 신사유람단과 영선사를 일본과 청에 파견하여 신식무기·공업 등을 학습하도록 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조선책략의 연미론유포되자 1881년 김윤식이 영선사로 청에 갈 때 밀명을 내려 청에 한미수교를 주선해 줄 것을 요청했고, 또한 개화승 이동인을 일본에 보내어 주일청국공사 하여장에게 대미수교의 주선을 요청하기도 했다. 1882(고종 19)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장호원에 있는 민응식의 집에 피신하여 고종과 비밀리에 연락하는 한편, 청에 군대를 요청하여 임오군란 후 집권했던 대원군을 청으로 납치하게 한 뒤 정국을 다시 장악했다.

 

그녀를 비롯한 민씨척족은 이때부터 친청사대로 기울었고, 개화파의 급진적인 움직임에 제약을 가하기 시작했다.1884(고종 21) 김옥균·박영효 등 급진개화파가 갑신정변을 통해 정권을 장악하자, 다시 청의 도움으로 이들을 제거했다. 1885년 러시아의 남하를 우려한 영국이 거문도사건을 일으키자, 묄렌도르프를 통해 영국과 교섭하는 한편 러시아와도 접촉했다. 이에 청과 일본은 러시아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대원군의 환국을 주선하여 민씨척족 세력과 정권다툼을 벌이도록 유도했는데, 1894년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고 그 여세를 몰아 조선정계에 압력을 가해오자 그녀는 친러시아적인 태도를 보임으로써 일본에 대항했다.

 

 더욱이 3국간섭으로 일본의 대륙침략 기세가 꺾이자, 러시아의 힘을 과신하여 친러경향을 더욱 굳혔다. 1895(고종 32) 108일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는 일본의 조선병합에 가장 큰 장애가 되고 있던 명성황후와 그 척족세력을 제거할 목적으로 김홍집 내각의 일부 세력과 대원군 세력, 그리고 해산하기로 예정된 훈련대와 일본 정치낭인으로 하여금 황궁을 습격하고 명성황후를 학살하게 한 을미사변을 일으켰다. 명성황후는 일본 낭인들에 의해 옥호루에서 살해된 뒤 황궁 밖의 송림에서 시체가 불살라지는 불행한 최후를 맞았다.

 

그녀는 곧이어 세워진 친일정권에 의해 폐비되었으나 곧 복위되었고, 국체가 대한제국으로 바뀐 뒤 명성황후로 추책되었다. 세간에 알려진 '민비'라는 이름은 고종이 황제에 등극하기 전 호칭으로 성씨인 민씨와 조선시대 왕의 부인인 왕비를 축약해 부르는 용어이며, 시해된 후 고종이 황제가 되자 여기에 맞춰 황후로 격상되었다. 오늘 워크샾 첫 방문지 명성황후 기념관에서 새롭게 역사 공부를 다시금 시작한다.

 

 

명성황후 기념관 방문

 

 

 

 

 

 

 

 

 

 

 

 

여주 강천보 방문

 

명성황후 기념관을 뒤로하고 바로 들른 곳은 강천보이다. 4대 강 사업 중에서 이포보와 함께 가장 아름다운 보로 알려져 있다. 주변에는 지상 11층 높이의 등대모양을 한 한강한강 문학관도 있었다.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강천보를 조망했다. 전망대에서 바라다보니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하게 아름다운 모습을 볼수 있었다. 강천보는 황포돛배 형상으로 건축되었다고 한다. 강천보는 여주 관광코스 중의 하나로 학생들도 많이 견학을 하고 있었다.

 

 

 

 

 

 

 

 

 

 

 

 

 

 

 

 

여주 영릉(세종대왕*소현왕후) 방문

 

우리는 강천보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영릉(세종대왕*소현왕후)에 왔다. 세계유산에 등재되어있는 조선 세종대왕릉을 보기 위해서이다. 입장료는 500원, 10인 이상 단체는 400원이다. 매주 월요일은 문을 열지 않는단다. 우리는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기념촬영도 하고 여러 가지의 발명품도 구경하였다. 그중에 최고는 한글 창제와 측우기, 혼천의, 해시계이다. 더불어 앙부일구도 빼놓을 수 없는 발명품 중의 하나이다. 영릉은 원래 서울 헌릉 서쪽에 있던 것을 예종 1년(1469년)에 여주로 옮겨왔다. 세종대왕의 위대한 업적을 길이 숭모하고, 그 위업을 오늘에 이어받아 민족문화 창조의 기틀로 삼고자, 1975년부터 1977년까지 세종전을 새로 짓고 경역을 정비하여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추었단다.

 

 

 

 

 

 

 

 

 

 

 

 

 

 

 

 

 

 

 

 

 

 

 

 

 

 

 

 

 

 

 

 

 

 

 

 

 

 

 

 

 

 

 

 

 

 

 

 

 

 

 

 

 

 

 

 

 

여주 신륵사 방문

 

오늘 일정은 강행군이다. 세종대왕릉을 견학한 후 곧바로 여주 신륵사로 이동했다. 남한강변에 위치한 신륵사는 심신 수련의 장이다. 입구에 들어서자 탬플스테이가 보였다. 신륵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이다. 신라 진평왕 때 원효가 창건하였다고 하나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조선시대에는 배불정책으로 이 절 또한 크게 위축되었다. 그러나 광주의 대모산에 있던 영릉(세종의 능)이 여주로 이장된 1469년(예종1년)부터 왕실에서 신륵사를 영릉의 원찰로 삼을 것을 결정하였고, 1472년(성종3년) 2월에 대규모 중창불사가 시작되어 8개월 만에 200여 칸의 건물을 보수 또는 신축하였다. 그 이듬해 대왕대비는 신륵사를 보은사라고 개칭하였다. 또한 절의 동쪽 강변 바위 위에는 삼층석탑이 있고, 경내의 서쪽 언덕에는 부도 2기가 있다. 삼층석탑은 나옹을 화장한 장소를 기념하기 위해서 세운 탑이고, 부도는 원래 조사당 뒤쪽에 있던 것을 1966년 11월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으나 누구의 것인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또한 나옹의 화장지에 세워진 삼층석탑 옆에는 강월헌이라는 6각의 정자가 있다. 그 전에 지어진 것은 1972년의 홍수로 떠내려가고, 그 뒤 삼층석탑보다 조금 아래쪽인 지금의 위치에 다시 세웠다. 누각의 이름인 강월헌은 나옹의 당호인데, 그를 추념하여 이곳에 누각을 세운 것이다. 또한 구룡루는 1689년(숙종 15)과 1749년(영조 25), 1860년(철종 11)에 각각 중수된 기록이 있다.

 

 

 

 

 

 

 

 

 

 

 

 

 

 

 

 

 

 

 

 

 

 

 

 

 

 

 

 

 

 

 

 

양평 푸른 지혜의 숲 팬션

 

여주 신륵사를 끝으로 오늘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간다. 양평 푸른 지혜의 숲 펜션으로 가는 길은,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산속으로 한참을 가서야 도착했다. 산아래 위치한 펜션이라 경치도 좋고, 공기도 맑았다. 산아래 둥근달이 걸쳐 있는 걸 보니 오늘이 보름인가 보다. 우리는 펜션에 도착하여 바비큐로 식사를 마치고 노래방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숙소로 돌아와 곧바로 피로에 쌓여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식당에서 해장국을 든든하게 먹고, 또다시 다음 견학지 여주 목아박물관을 향해 출발한다.

 

 

 

 

 

 

 

 

 

 

 

여주 목아 박물관 방문

 

숙소에서 출발하여 도착한 곳은 여주 목아박물관이다. 입장료는 5,000원이다. 마치 사찰에 온 듯한 느낌이 드는 목아박물관은 불교와 전통문화를 조각으로 만들어 전시해 놓은 곳이다. 전통문화의 발전을 위하여 박물관을 설립한 목아 박찬수는 실력과 공을 인정받아 1996년 12월 중요 무형문화재 제108호 목조각장으로 지정되었고, 대한민국 문화예술상과 만해상 등을 수상하였다. 현재는 도제식 학교인 목아 전통예술학교 교수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 우리는 이 곳을 두루두루 둘러보았다. 또다시 다음 목적지 여주 도자기 판매장으로 향한다. 신륵사 앞에 위치한 도자기 매장에서 각자 선물용품을 구매했다.

 

 

 

 

 

 

 

 

 

 

 

 

 

 

 

 

 

 

 

 

 

 

 

 

 

 

 

 

 

 

 

 

 

 

 

양평 용문사 방문

 

여주 도자기 매장에서 출발하여 양평 용문사로 왔다. 도착한 시간은 때마침 점심시간이었다. 우리는 용문사 입구인근 식당에 들어가 비빔밥에 막걸리 한잔했다. 식사를 마친 후 용문사 가는 일정은 접어두고 곧바로 서울로 출발하였다. 회사에서 마련한 1박 2일 워크숍 바쁘게 돌아다닌 보람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