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2026년 1월 11일-일)은 호텔에서 새벽 4시에 나와 한라산 관음사주차장으로 향한다. 밤새 내린 눈으로 차량에 눈이 소복이 쌓였다. 우선 기상을 알아본다. 한라산 탐방지원센터를 검색하니 관음사에서 삼각봉대피소까지는 등반이 가능하다고 한다. 반대편 성판악에서는 진달래대피소까지만 등반이 가능하다고 알려주었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눈산행이라도 하고 싶어 관음사 주차장으로 달려간다. 관음사 주차장으로 가는 동안 30분 동안은 오고 가는 차량 1대도 볼 수 없었다. 한라산이 가까워올수록 눈발은 더욱더 거세게 몰아쳤다. 게다가 바람도 강풍이 불어 이대로 도로에 묻혀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눈발을 헤쳐나갔다. 잠시 후 한라산탐방지원센터에서 한라산 탐방로 전면금지한다는 카톡이 왔다. 오늘 산행은 무산되는 순간이다. 그래도 아쉬워서 관음사탐방로 주차장에 가서 다시 한번 살펴본다. 전광판에 기상악화로 인한 전면통제라는 글자가 보였다. 우리 같은 사람이 몇 사람 더 있었다. 아쉬운 마음에 차를 돌려 시내로 들어온다. 시내로 들어오다가 난타호텔에 들러 공연을 보기로 한다. 그러나 공연도 16시 30분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이제 오늘 할 일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다시 제주 시내로 들어온다. 갑자기 제주목관아가 보인다. 어제 보려다가 시간이 맞지 않아 못 본 곳이다.

제주목관아 매표소이다. 매표소에서 티켓팅한후 들어간다. 제주도의 정치ㆍ행정ㆍ 문화의 중심지이자 제주고유의 역사적 숨결이 아우르는 공간 제주목 관아이다.

조선시대 제주지방 통치의 중심지였던 제주목 관아는 지금의 관덕정을 포함하는 주변 일대에 분포해 있었으며, 이미 탐라국시대부터 성주청 등 주요 관아시설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고 있다. 관아시설은 1434년(세종 16) 관부의 화재로 건물이 모두 불 타 없어진 뒤 바로 역사를 시작하여 그다음 해인 1435년에 골격이 이루어졌으며, 조선시대 내내 증·개축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제주목 관아는 일제강점기 때 집중적으로 훼손되어 관덕정을 빼고는 그 흔적을 볼 수가 없었다.

제주목관아는 1993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지정면적 1만 9533㎡. 관덕정(보물, 1963년 지정) 인접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1991∼1992년 2차에 걸친 발굴조사로 탐라국으로부터 조선 · 근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시기의 유구와 문화층이 확인되었다.

특히 조선시대의 관아시설인 동헌과 내아의 건물지 등이 확인되어 제주목의 관아지로 밝혀진 중요한 유적이다. 발굴조사로 밝혀진 건물지는 동헌터를 비롯하여 내아터 · 내대 문 터 · 홍화각터 등이며, 이들의 기단석 열과 주춧돌, 담장터 등이다.

시대상으로는 조선 전기 말 16세기경부터 후기 19세기경까지의 건물터와 담장터 등이 확인되었다. 또한 이들 조선시대 유구 밑에서는 통일신라시대(탐라국)의 문화층도 나타났다. 출토 유물은 기와조각이 대부분인데, 그중에는 명문기와도 있다고 한다.

막새기와에는 연꽃무늬를 오목새김한 수법의 목판 형식과 단판 형식의 연판무늬장식이 있다. 도자기는 15∼16세기의 조선시대의 각종 분청사기 및 백자조각이 다량으로 출토되었는데, ‘내동’ · ‘대해’ · ‘충’ · ‘향공’ · ‘정’ 등의 명문도자기가 출토되었다.

제주목 관아지는 조선시대 이후 『탐라순력도』 등 많은 기록이 있어 제주의 정치 · 행정 · 문화의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으며, 제주대학교 발굴팀에 의하여 여러 유구와 유물이 출토됨으로써 그 중요성이 더욱 확인되었다. 전문가의 고증과 자문을 거쳐 2002년 12월 복원공사를 완료하였다.

제주목관아 탐방을 마치고 렌터카 반납을 위해 렌터카 사무실 방향으로 간다. 오늘 공항에서 출발시간은 저녁 7시 10분인데 그동안 어디에서 시간을 보낼지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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