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역사문화대장정

제주 추사관

불~나비 2026. 1. 14. 11:49

오늘(2026년 1월 10일-토)은 항파두리 항몽유적지 탐방을 마치고 제주 추사관을 향한다.  제주 추사관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둘러보니 기다란 돌담이 보인다.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니 제주 추사관이 보인다. 요즘에 역사문화대장정에 나서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았다. 가는 유적지마다 사람들이 많이 와 있었다.

 

제주 추사관을 알리는 건물이 보이고 그 앞에 김정희 유배지가 있었다.

 

 

제주 추사관 관람 후 서귀포 김정희 유배지를 관람하라는 안내문이 보인다.

 

 

제주 추사관 입구이다. 추사관은 지하에 있었다. 지하에 있어 수년 전에는 수해피해도 입었다고 한다.

 

 

추사 김정희 선생은 타고난 천품과 치열한 학예연찬으로 서예사에서 뿐만 아니라 금석고증학, 경학, 불교, 회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19세기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석학이다. 추사 선생이 55세가 되던 해인 1840년 윤상도 옥사사건에 연루되어 제주 유배길에 올라 약 9년간 유배생활을 하였다. 추사 선생은 8년 3개월 제주에 머물면서 부단한 노력과 성찰로 ‘법고창신’하여 ‘추사체라는 서예사에 빛나는 가장 큰 업적을 남겼으며, 그 유명한 세한도를 그려내었다고 한다.

 

추사 나이 59세 되던 1844년 제주도에 유배 온 지 5년이 되었을 때 추사는 생애 최고의 명작으로 꼽히는 세한도를 제자인 이상적에게 그려 주었다. 제자인 역관 우선 이상적은 스승 추사가 귀양살이하는 동안 연경에서 구해온 귀중한 책을 정성으로 보내주었다. 추사는 그 고마운 마음의 표시로 세한도를 그려준 것이다.

 

세한도의 오른쪽에는 소나무 측백나무가 그려져 있고, 그 사이에 집 한 채가 배치되어 있으며 그 왼쪽의 네모 칸에는 그림을 제작하게 된 내력을 적고 있다. 추사는 이 그림 속에서 간결한 화면구성과 메마르고 거친 초목의 필치를 통해 차갑고 황량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겨울의 모습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특히 세한도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시의 즉 그림 속에 내포된 의미이다. 추사는 논어 자한편의 날씨가 추워진 다음에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시들지 않았음을 안다라는 인용구를 그림으로 시각화하여 송백과도 같은 제자의 지조와 절개를 칭송하였다. 이렇듯 세한도는 추사의 인간적인 감정까지 온전히 담아냈기에 문인화의 전형이자 추사 최고의 역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추사 김정희 유배지 초가집에 가보기로 한다. 

 

우리 어렸을 때 시골의 모습과 별 다름이 없었다. 

 

 

제주 추사관 탐방을 마치고 우리는 항몽유적지 선물코너에서 만난 주인장님이 소개해준 산천단 소나무를 보러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