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기도산/북한산

눈에 덮힌 북한산, 진달래능선에서 족두리봉까지 능선따라 걸었다

불~나비 2012. 1. 1. 09:45

 

 1. 산행일시 : 2011년 12월 31일, 10시 30분~17:00(6시간 30분)

 2. 산행 장소 : 북한산(문수봉 727m, 청수동암문 694m, 승가봉 567m, 비봉 560m, 족두리봉 370m)

 3. 산행코스 : 4.19 탑~진달래 능선~대동문~보국문~대성문~대남문~청수동암문~사모바위~족두리봉~용화 1 공원 지킴터

 4. 산행거리 : 10km(4.19 탑~대동문=2.7km, 대동문~청수동암문=1.9km, 청수동암문~비봉=1.8km, 비봉~족두리봉=2.6km, 족두리봉~용화 1 지킴터=1.0km)

 5. 산행 인원 : 2명(불나비, 뫼가람)

 

 

북한산 최고봉 백운대 높이 837m. 한반도의 서부지방 곳곳에는 주요산맥들과 맥이 뚜렷이 이어지지 않고 우뚝 솟아 있어 명산으로 추앙받던 산이 많은데, 북한산도 이에 속한다. 서울시 주변지역에서 가장 높으며, 주위에 도봉산·노고산 등이 있다. 예로부터 부아악(負兒嶽)·화산(華山)·한산(漢山)이라고도 했으며, 주봉인 백운대를 중심으로 북쪽에 인수봉(811m), 남쪽에 만경대(800m)의 3봉이 삼각형으로 놓여 있어 삼각산이라고도 한다. 기반암은 화강암이며, 급경사를 이루어 산세가 험하다. 만경대는 무학대사가 조선의 도읍지를 정할 때 올랐다하여 국망봉이라고도 한다. 비봉에는 신라 진흥왕순수비가 세워져 있다. 인수봉은 암벽등반의 최적지이며, 그밖에 노적봉·보현봉·문수봉·원효봉 등이 있다. 북서쪽의 원효봉과 나한봉에 이어지는 능선에는 1711년(숙종 37)에 쌓은 북한산성이 있으며, 대동문·대서문·대남문·대성문·보국문 등이 남아 있다. 오늘은 북한산을 뫼가람님과 함께 등반을 시작했다.

 

 

오늘 우리가 산행할 코스이다. 4.19 탑 위 강북청소년수련관을 들머리로 하여 진달래 능선을 거쳐 대동문에 오른 후 보국문, 대성문, 대남문, 청수동암문을 거쳐 사모바위, 족두리봉 방향으로 하산할 예정이다.

 

 

들머리에서 조금 올라가니 김도연 선생 묘소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옆길로 가면 북한산 둘레길 구간이고 위쪽으로 가면 진달래 능선으로 올라갈 수 있다.

 

 

대동문 방향 안내표지가 보인다.  

 

 

 

진달래 능선에 오르니 전망 좋은 장소가 나타났다. 용암봉, 만경대, 백운대, 인수봉이 조망된다.

 

진달래 능선을 오르다 보면 소귀천계곡에서 올라오는 코스와 만난다. 이곳 주변에는 약수터가 있다. 이제 대동문도 얼마 남지 않았다.

 

 

대동문이다. 북한산 시단봉에서 2012년 새해를 맞이하라는 플래카드가 보인다.

 

 

북한산 12 성문 코스이다. 사진 속에 쪼그려 앉아 사진 촬영하는 내 모습이 보인다.

 

 

백운대에서 보국문, 대성문, 대남문 가는 방향과 거리를 안내해주는 표지이다.

 

 

성곽 주변을 걷다 보니 멀리 일렬로 산행하는 산우님들의 모습이 보인다. 2011년을 마무리하면서 자신을 뒤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인 것 같다.

 

 

아카데미하우스에서 올라오는 칼바위의 모습이다.

 

 

산성 능선에서 쾌청한 날씨에는 도봉산 오봉, 주봉 등을 볼 수가 있다.

 

 

 

 

눈이 살포시 내린 산성 능선을 걸어간다. 내리막길은 약간 미끄러운 구간도 있었다.

 

 

계속 이어지는 산성 주능선이다.

 

 

대성문에 도착했다.

 

 

 

 

문수봉에 도착했다. 문수봉은 비봉의 북동쪽 끝자락인 북한산 줄기의 정중앙에 해당되며 북한산에서 백운대, 만경대, 인수봉 다음으로 높은 봉우리이다. 멀리 비봉, 노적봉,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와 가까이 보현봉까지 북한산의 이름 있는 봉우리들이 한자리에서 모두 조망이 된다.

 

 

주변에 아름다운 바위들이 많이 있었다.

 

 

멋있는 바위를 줌으로 당겨 촬영해 보았다.

 

 

 

 

청수동암문이다. 이곳에서 비봉 쪽으로 하산을 해야 사모바위를 갈 수 있다. 주의를 요하는 구간이다.

 

이문을 통과하여 아래쪽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바람이 통하는 통풍 바위를 거쳐 올라간다.

 

 

앞전에 길을 잘못 들어 나는 청수동암문에서 직진하여 알바를 했다. 뫼가람님과 헤어진 후 통화가 되지 않아 문자로 주고받은 후 겨우 조우할 수 있었다. 뫼가람님이 승가봉에 먼저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인근에 있는 천년고찰 승가사의 이름을 따서 승가 봉이라고 이름 붙여졌나 보다.

 

승가봉에서 하산하는 길에도 조망 좋은 곳이 있었다. 북한산은 봉우리에 올라가면 주변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 많이 있다.

 

 

 

 

사모바위를 줌인했다. 북한산 비봉능선에 있는 사모바위는 사랑하는 여인을 애틋하게 기다리다 바위가 된 남자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조선 인조 임금 때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자가 전쟁터로 갔다가 다행히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고향에 돌아오니 사랑하는 여인이 청나라로 갔다. 남자는 여인이 풀려나 돌아오기를 기다렸고 드디어 전쟁이 끝나고 여인들은 풀려났으나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북한산 자락 지금의 홍은동 지역에 모여 살았다. 남자는 여인을 찾으려고 그 지역을 샅샅이 뒤졌지만 찾지 못했고 결국 그는 북한산에 올라 북쪽을 바라보며 언제고 돌아올 그녀를 기다리다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환 향년"이라는 이름으로 양반 가문에서 갖은 이유로 내쳐지기만 했던 여인네들의 이야기와는 다르게 남자의 순애보가 전해져 오는 바위인 것 같다.

 

 

 

사모바위 앞에서 뫼가람님과 함께 기념 촬영했다.

 

 

 

 

 

1968년 1.21 사태 때 북한 무장군이 하룻밤 숙영 한 자리이다. 밀랍인형으로 모형을 만들어 놓았다. 사모바위 뒤에 V자형 동굴이다.

 

 

 

 

 

 

 

 

비봉이다. 몇 년 전에 왔을 때는 올라갔는데 지금은 추락위험지역으로 출입을 제한하고 있었다.

 

 

비봉의 모습이다. 눈이 살짝 쌓여있어 미끄러워 보인다.

 

 

 

 

사모바위에서 향로봉 가는 길로 직진한다.

 

 

비봉을 멀리서 줌인했다. 진흥왕순수비는 신라 진흥왕(재위 540∼576)이 세운 순수척경비(巡狩拓境碑) 가운데 하나로, 한강유역을 영토로 편입한 뒤 왕이 이 지역을 방문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원래는 북한산 비봉에 자리하고 있었으나 비(碑)를 보존하기 위하여 경복궁에 옮겨 놓았다가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조선 순조 16년(1816)에 추사 김정희가 발견하고 판독하여 세상에 알려졌다. 지금 세워진것은 복사본 모형도이다. 

 

멀리 향로봉이 보인다. 출입이 제한되어 있다. 위험구간인 듯하다.

 

 

 

 

 

납작하고 경사진 바위도 주변에 조망되었다.

 

 

향로봉을 아래쪽으로 빙돌아 족두리봉을 향해 갔다.

 

 

향로봉 위치 표지석에 산불감시초소가 있었다. 이 구간도 옆으로 직진하면 안 되고 아래쪽으로 내려가야 족두리봉으로 갈 수 있다.

 

 

이곳에서 북한산에만 전문적으로 다닌다는 산우님을 만나 사진 촬영도 부탁하고 족두리봉 올라가는 코스부터 하산까지 도움을 받았다. 덕분에 뜨거운 커피도 마시고 감사할 따름이다. 

 

 

 

 

 

멀리 족두리봉이 보인다. 해넘이 산행을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란다. 그런데 서울에서는 오늘 해넘이 산행을 볼 수가 없었다.

 

 

 

 

 

 

족두리봉에서 보는 주변 산들이 여러 겹으로 보인다.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족두리봉은 불광역에서 올라왔다 내려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산으로 리찌 산행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용화 1 지킴터로 하산을 완료했다. 오늘 10시 30분에 출발하여 17시에 산행을 종료했다. 쉬엄쉬엄 걸어서 6시간 30분 걸렸다. 올해 해넘이 산행, 비록 해넘이는 보지 못했지만 뫼가람님과 함께한 즐거운 산행이었다. 2012년 흑룡의 해임진년 새해에도 열심히 산행하여 내 건강은 내가 지키겠다는 각오를 다시 한번 새긴다.